이사람들은 왜 이길 수 밖에 없는가? -2. 폭력에 대한 반응의 상이함

 ETC
첫번째 글이 뜻하지 않게 좋은 반응을 받고 있네요.. 좀 땀 납니다.
사실 한번에 이어 쓰려 했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조금씩 잘라 쓰려고 합니다.

이번 글은 두번째, 폭력에 대한 상이한 반응에 대한 글입니다.

이번 시위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비폭력" 입니다.
거의 절대적인 명제처럼 지켜지고 있는 몇 안되는 규칙이 바로 이 '비폭력" 인데요..

"정당한 자기방위"와 "비폭력"은 그야말로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떡밥이었습니다.
지금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 "폭력전경 개인"에 대한 논쟁도 이 폭력-비폭력 논쟁의 쌍둥이 동생과 같은 성격이죠.

폭력적 진압을 일삼는 전경의 행위를 개인적 폭력으로 보지 말고, 그 뒤에 숨은 권력을 보자고 많이 말씀하시는데,
2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20년 전에는, 그 전경들의 폭력을 "독재권력의 폭력의 물화된 표현"으로 보았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또 전경 개개인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나 적개심 없이도, 독재 권력의 물화된 표현에 맞서 그들에게 돌이나 화염병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비폭력"은, 그러한 거대한 담론이 제거되고, 벗겨지면서, "전경"을 "전경 개인", 즉, 일정 기간동안 자신의 의지와 크게 상관없이 국가에 복무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리고 상부의 지시에 의해 죽어라 고생하며 욕을 먹는, 하지만 개인적 차이에 따라 어떤 애들은 좀 불쌍하고, 어떤 애들은 많이 못된, 그야말로 현상을 현상 자체로 물질화 시켜서 보는 대중들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폭력이 단지 이런 이유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겠죠. 다만 이런 이유가 이번의 경우 더욱 부각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대응입니다.

저희 세대의 시위는 지금과 비교해 매우 폭력적이었습니다.
(물론, 수구 언론의 왜곡된 보도를 통해 표현된 시위대의 폭력성은 공권력의 그것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이 미약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폭력성의 근저를 살펴보면, 그러한 폭력성의 바닥에는 공포심이 깔려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는 어려서부터 경찰이 무서웠습니다.
대여섯 살 꼬마 시절에는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다" 는 부모님의 협박에 울음을 그쳐야 했고 (물론 일제시대의 "순사가 잡아간다"의 잔재였겠지만요), 중고생 시절에는 담배를 피울때도, 술을 먹을때도, 심지어 그저 수업을 빼먹고 거리를 방황할 때에도 경찰관이 보이면 무서워서 숨었습니다.
경찰은 절대적인 권력의 표현이었고, 대학교 1학년 시절 처음 광주의 참상을 접하며 국가가 개인에게 저지른 폭력의 부당성을 목격한 후에도 여전히 공권력은 그 이름 그대로 "공적인 권력"으로서의 권위와 공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선생님도 무서웠습니다.
선생님의 어떠한 부당한 체벌도 무서워서 다 받아야 했고, 열대 맞을 것을 아홉대 맞으면 운 좋았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이고, 군사부는 일체였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한 기본적 공포는 저희 세대에게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세대는 길에 나가 공권력에 맞설 때에도, 공포 때문에 항상 가슴이 뛰었고, 맞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더욱 강력하게 폭력적으로 맞섰던 것 같습니다.
좀 희화화 해서 말하자면 "정신 줄 놓은 상태에서 심하게 앙탈을 부렸"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말은 절대 그 당시의 투쟁을 희화화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심리상태를 자학적으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저희들의 싸움의 주된 정서는 "분노"와 "눈물" 그리고 "공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공권력의  폭력성을 목도한 국외자들도 "분노"를 일으켰지만, 그 "분노"는 "공포"에 눌려 그저 "눈물"로 그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항상 싸움은 "소수자"들의 것이었고, 언론에 의해 왜곡되고 매도되기 쉬운 것이었고, 그 것이 다수의 물결이 되기까지는 수년간의 "분노"가 축적되고 축적되어서 결국 "공포"를 이겨야만 하는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달랐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폭력"에 대한 경험이 적습니다.
따라서 폭력에 대한 "공포"도 적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폭력"을 당했을 때, "분노"의 크기는 비슷하지만 "공포"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적기에, 그 "분노"가 "참여"로 이어지는 임계점이 매우 낮은 것 같았습니다.
한 밤중에 인터넷을 통해 공권력이 자행하는 폭력을 본 젊은이들은 "분노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며 뛰쳐나와 대열에 합류합니다.

최근 몇년 간 선생님의 체벌을 핸드폰으로 찍고, 실시간으로 경찰에 전화해서 고발하는 중고생들의 모습을 보고, 저도 다른 어른들처럼 "스승에 대한 존경심의 부재"와 "이 아이들의 개념없음"을 한탄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이 젊은이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절대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내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폭력 자체"를 부당하게 생각하고, 그 폭력이 지닌 권위 따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폭력에 저항"하는 경험을 어릴 적부터 쌓아 온 세대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들은 폭력을 "인내"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폭력이 "공포"를 자극해서 행동을 잠잠하게 만들기는 커녕, 더욱 큰 참여와 저항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경찰은, 정부는, 이명박씨는 얼마나 답답할까요?
결국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폭력" 을 쓰는 것 뿐인데,
최루탄을 다시 쏘고, 더욱 무자비하게 진압강도를 높이는 것이 유일한 길이겠지요.

그러나 여전히 두가지 문제가 남습니다.
첫째, 최루탄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쓰기 힘듭니다.
87년을 거치며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능 해 졌듯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것 또한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최루탄은 달콤하지만 파멸을 의미하는 금단의 열매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는 말씀이지요.

둘째,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에게 최루탄이면 먹힐지 안먹힐지, 즉 최루탄이 이들에게 "충분한 공포"를 제공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참, 난감하겠습니다.
이 사람들.... 이사람들을 이기기는 정말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다음 편 글의 제목은 "이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이들은 "우아함"을 위해 싸우고 있다" 입니다

Hochiminh diary

베트남, 호치민시를 그리워 하는 한 남자의 잡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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