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은 왜 이길 수 밖에 없는가? - 1. 무질서의 절대적 강력함
ETC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시고, 정부는 더욱 폭압적으로 국민의 뜻을 억압하는 지금,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를 느끼는 상황에서 그때의 글을 읽어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내가 너무 "옆에서" 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야말로 구경꾼의 입장에서 쓴 건방진 글이 아니었는지...
그래도 그 때의 나의 생각을 가감없이 기록에 남겨두고 싶다.
지금 2009년의 시점에서 다시 글을 써보고 싶지만, 머릿속이 어지럽다.
내 머릿속은 아직 상중인 듯 하다.
며칠간 촛불집회를 "구경"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87년 6월에 23세의 청년으로 그 뜨거운 현장에서 "구경"을 했던 세대로서, 이번 촛불집회를 보는 저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뭐라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
벅차기도, 흐뭇하기도 하고, 두렵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고 갑갑하기도 하고...
많은 생각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 현상은 해석이 쉽지 않다"
그리고,
"이 싸움은 절대 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끝을 알 수가 없다."
였습니다.
80년대 중반 학번의 세대로서, 87년을 전후한 80년대와 2008년을 비교해보면서 몇가지 재미있는 차이점을 개인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첫번째 느낌, 무질서의 절대적 강력함에 대해 써 보고자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번 촛불집회는 "한심할" 정도로 무질서합니다.
집회를 진행하는 주최측(?)도 도대체 뭘 주최한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그저 모인 사람들을 한곳에 모이게 하는 역할만을 합니다.
예전에는 대형 집회의 경우 고 문익환 목사님(명복을 빕니다), 백기완선생님(건강하세요), 야당의 몇몇 인사, 각 종교계 어르신들 등 소위 명망가의 연설, 총학생회, 노동조합등 각급 단체 대표의 연설, 선언문 발표, 노래 함께부르기, 행진 등 정해진 집회의 형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몇곡의 노래를 반복해서 틀고, 그나마 그 노래를 다 아는 사람들도 없고, 아는 사람은 따라부르고, 모르는 사람은 그냥 앉아 놀고, 행사진행이라고 해봐야 시민 발언대를 열어 몇몇 시민들이 올라가 열정적이지만 대부분 두서없는 열변을 토하고, 그리고는 "자, 이제 갑시다" 하며 떼로 세종로를 점령하고 걸어가기 시작하는 것이 행사의 전부입니다.
행진중에도 곳곳에 산만한 깃발들이 나부낄 뿐, 통일된 구호, 구호를 외치는 형식 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누가 외치면 따라 외치고, 힘들면 그냥 걷고, 구호도 가장 원시적인 네자 구호, 여덟자 구호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무질서는 정말 무섭도록 유연하고 강력하더군요.
어제 그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광화문을 거친 시위대는 서대문을 지나 경찰청에 도달했습니다.
시위대의 맨 앞은 각 단체의 깃발들이 차지했고, 시위대는 경찰청 정문앞 저지선부터 서대문 로터리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여전히 중구난방식의 "폭력경찰 물러가라" "어청수를 구속하라" "물대포를 맞아봤냐" 등의 구호를 한 20분 쯤 외치고 서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필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 시위대의 선두와 후미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선두는 "선봉대"의 자리이고, 선두에 따라 전체 행렬의 움직임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규모 대치의 상황, 뒤돌아 설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선두와 경찰의 물리적 충돌을 통해 그 대치를 해소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폭력양상이 시작되는 거죠.
그런데....
기가 막히게, 이놈의 시위대는 "뒤로, 뒤로"를 외치며 슬슬 뒤로 돌아서더니...
맨 후미가 선두가 되어 그냥 또 광화문으로 "빠꾸"를 합니다.
조직화된 시위대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절대적 유연함이 빛을 발하는 겁니다.
앞뒤가 따로 없는, "하등동물적" 시위대!!
이건, 저희 세대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당연히 경찰들도 예견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돌아설지, 안돌아설지 모른다는데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전략을 파악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아예 "전략이 부재" 하기 때문에, 대처할 방법이 없는 것이죠.
세계의 어느 공권력이 이런 "무질서", 그것도 꼬투리 하나 잡기 힘든 "평화적 무질서"를 경험해 봤겠습니까?
이건 정말 이기기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분석불가능성"을 무기로 삼은 수만명의, 그리고 그 뒤에 그것을 함께 지켜보는 수백만의 사람들을 어떻게 이깁니까?
"대중"을 "대상"으로 생각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대중에게 무릎꿇어야만 한다"는 절대 진리를 다시 한번 보게 만든 무섭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다음 글은 "폭력에 대한 반응의 상이함" 에 대한 감상을 이어서 써 보겠습니다.




